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카다 유키코 투신자살 사건 (문단 편집) == 죽음의 이유를 둘러싼 많은 설 == 유키코가 갑작스럽게 스스로 삶을 포기한 이유는 여전히 미제로 남아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s12.postimg.org/20120415_424540.jpg|width=100%]]}}} || || '''{{{#fff TBS 드라마 '금지된 마리코(禁じられたマリコ)'의 포스터.}}}''' || 1985년 11월 초부터 1986년 1월 말에 걸쳐 TBS로 방영된 드라마 [[금지된 마리코]]에서 유키코는 함께 출연한 배우 미네기시 토루와 연인 관계로 발전했는데 토루에게 거절당하자 자살했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졌다. 유키코의 어머니가 유키코가 쓴 글 등을 모아 1988년 7월에 출판한 책 <사랑을 주세요(愛をください)>[* 유키코가 생전에 쓴 글을 모았기 때문에 오카다 유키코 명의로 출판되었다.]에 이런 내용이 있다. ||카요(윳코의 본명)의 유서 - 지금도 그것을 유서라고 해야 좋을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 그 중 미네기시 토오루씨의 이름은 확실히 쓰여져 있었습니다. 미네기시 씨를 좋아했다고. (중략) 저는 그 후 두 번 다시 그 "유서"를 보지 못했습니다.|| 일부 노출된 유서에는 연필로 오카다 유키코가 직접 "미네기시 씨와 마지막으로 만나고 싶었다. 제 멋대로 행동해서 죄송합니다."라고 쓴 내용이 있었기 때문에 전술한 것처럼 미네기시 토오루가 사건 당일 밤에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미네기시 토루와는 드라마 촬영 후 돌아가는 방향이 같아서 바래다주기도 했다고 하는데 사망 전날 오후 11시 반 이후부터 택시를 타고 미네기시 토루가 살던 세이죠의 자택 앞으로 찾아가 새벽 5시까지 혼자 기다렸다 돌아왔다는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보도도 있었다. 그러나 후일 주간지에 미네기시가 "나의 인생에서 가장 귀찮은 사건이었다."고 발언했다는 보도가 게재되기도 했다. 미네기시 토루는 당시 유키코와 나이차가 20살 이상이나 되는 어린 딸이 있는 이혼남이었으며 본인 스스로도 투신자살 사건 발생 이후 기자회견에서도 유키코에 대해 "귀여운 동생 같은 느낌이나 이성적인 느낌이 아니라 마치 '형'(アニキ) 같은 느낌이었다."며 이성적인 감정이 아니었다고 극구 부인했다. 미네기시 토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저 유키코에게 연예개 선배로서 후배에게 호의를 베풀었을 뿐인데 어린 유키코가 미네기시의 호의에 반해 연심을 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을 주세요>에 "미네기시 씨에 대한 일은 여성 주간지, TV 등에서 이래저래 퍼뜨려져서 그때마다 저는 미네기시 씨에게 죄송했고, 또 딱하다는 마음만이 들었습니다."라고 적어 놓은 것, 후쿠다 전무와 아이자와 사장이 밝힌 유서의 내용에서 남들이 생각하는 이상한 관계가 아니라 플라토닉한 짝사랑이었다는 증언을 보면 더더욱 확실해진다. 지금으로선 이 이유가 거의 확실하다고 보면 될 듯하다. 인터넷이 발달한 후에는 이 사건에 배우 [[칸다 마사키]]가 개입되었다는 설도 퍼졌는데 칸다 마사키와 오카다 유키코는 연인 관계였고 유키코가 칸다의 아이를 임신까지 했는데 칸다 마사키와 [[마츠다 세이코]]가 결혼한단 발표가 나오자 충격에 빠져 자살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카다 유키코가 둘의 약혼식에 소속사 후배로서 한껏 밝은 얼굴로 축하해 주는 영상이 남아 있기도 하고 임신으로 휴업 중이던 마츠다 세이코가 오카다 유키코를 위해 직접 작사와 데모 레코딩까지 해 준 '[[입술 Network]]'를 듣고 오카다가 감격했다는 레코딩 관계자의 증언도 있으므로 칸다가 관련되었다는 설은 어디까지나 찌라시가 써내린 자극적인 루머일 뿐이다. <사랑을 주세요>에서도 유키코의 어머니가 해당 설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분노할 정도였다.[* 칸다가 연관되었다는 설은 유키코가 자살한 직후부터 퍼졌던 모양이다. 다만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옛날의 소문이 다시 퍼진 것이다.] 유키코가 남긴 일기장과 유서를 가지고 있다는 [[선 뮤직 프로덕션]]의 아이자와 사장도 마츠다 세이코와 칸다 마사키 커플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내용으로 메세지를 전했다. 이외에도 원래 오카다 유키코가 좋아하던 대상은 배우 타치 히로시[* 사건 당시 칸다 마사키와 같은 이시하라 군단의 멤버였다.]라는 등 유키코가 [[성소수자]]였다는 등 온갖 추측이 무성하다. 자살 직전까지 함께 있었던 [[선 뮤직 프로덕션]] 소속사의 후쿠다 전무는 방송에서 첫 번째 자살 미수 때는 연심이나 기타 사적인 일 때문에 고민하던 것이 원인이었으나 두 번째 자살 시도는 자신의 자살 시도가 알려져서 사무소나 가족들에게 폐를 끼쳤다는 심적 부담이 커진 것이 이유가 아닐까 하고 추측하였다. 후쿠다는 유키코가 사라졌을 때 무언가를 직감하여 사내 건물을 돌아다니면서 찾아다녔는데 옥상으로 향하는 비상 계단 위에서 유키코가 신고 있던 슬리퍼가 가지런히 놓인 모습을 발견했다. 유키코는 생전 혼자서 고민을 끌어안는 성격이었고 자살하기 전부터는 무언가를 골똘히 고민할 때가 잦았다고 한다. 유키코가 자살한 원인을 두고 일각에서는 이런 추측을 내놓기도 한다. 유키코는 감수성이 풍부하고 때묻지 않은 성격이었는데 일본 연예계의 추악한 일면을 알고 연예인이라는 직업의 꿈과 환상이 깨지는 바람에 연예계 자체에 환멸을 느껴 아이돌을 그만두려고 했지만 아이자와 사장은 유키코를 [[마츠다 세이코|세이코]]처럼 톱 아이돌로 육성하고 싶었기 때문에 격렬하게 반대하여[* 당시 유키코는 제2의 [[마츠다 세이코]]라는 거대한 타이틀을 쥔 대형 신인이었다. 자살한 1986년에는 첫 번째로 발매된 싱글 <입술 네트워크(くちびるNetwork)>가 처음으로 오리콘에서 1위를 차지하여 안 그래도 가파르게 오르던 인기에 한창 박차를 가했다. 선배 아이돌 세이코나 [[나카모리 아키나|아키나]]처럼 톱 아이돌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은퇴가 무산되자 절망해 투신자살을 택했다는 것이다. 다만 생전에 근면성실하고 굉장한 노력가인 유키코가 단순히 연예계에 실망했다거나 연애가 깨졌다는 문제 등으로 준에 대한 실망, 연애 문제 등으로 자살할 것 같지는 않다는 추측도 있다. 오히려 스케줄이 너무 과도하여 피로에 시달리다가 우울증이 발병했고[* 오카다 유키코는 스케줄이 하도 빠듯하게 짜여서 하루에 3~4시간밖에 잠을 자질 못할 정도였다. 한참 인기를 얻을 무렵 "요즘은 하루에 20시간 정도는 일하고 있어요."라고 밝혔고 1985년 12월에는 과로로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예기치 않게 휴일이 생기자 우발적으로 자살 기도를 했다가 사건이 너무 커지자 가족들과 소속사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쳤다는 데게 큰 죄책감을 느껴서 자살을 했다는 추측이다. 유키코의 소속사 [[선 뮤직 프로덕션]]의 아이자와 히데요시 사장은 유키코가 생전에 쓴 일기와 분홍 종이에 쓰인 '유서'도 수중에 넣었다. 아이자와는 이를 두고 대중들을 상대로 계속 보여줄까 말까 밀당하였으나 결국 단 한 번도 그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심지어 유키코의 유족들도 내용을 모른다고 한다.[* 유서는 소속사의 금고에 철저한 보안 아래 현재도 보관 중이다.] 아이자와 사장은 끝까지 이 유서 내용을 세상에 밝히지 않았고 2013년 [[췌장암]]으로 사망하였으므로 금고가 열리지 않는 한 유키코 자신이 설명한 자살 원인이 밝혀질 가능성은 이제 없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오카다 유키코, version=357, paragraph=1.3)] [[분류:오카다 유키코]][[분류:쇼와 시대/사건사고]][[분류:일본의 미제사건]][[분류:1986년/사건사고]][[분류:일본의 자살 사건]][[분류:신주쿠구의 사건사고]][[분류:일본의 아이돌 사건 사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